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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는 왜 단골식당이 없을까

김영삼 칼국수 김대중 연포탕 [김기완 기자 2015-02-08 오후 5:45:24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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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반자, 동지를 뜻하는 ‘컴패니언(companion)’은 라틴어 함께(com)와 ‘빵(panis)’이 합쳐진 말입니다. 빵을 함께 먹는 사이, 그게 동지라는 거죠. 우리말 ‘식구’에도 먹을 식(食), 입 구(口)가 들어갑니다. ‘밥 같이 먹는 사이’는 곧 믿을 수 있는 사이라는 겁니다. 

외국인들이 가끔 묻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왜 맨날 ‘밥 먹자’ ‘밥 먹자’ 하는가.” 그건 한국의 독특한 문화다, 밥을 먹으면 긴장감이 사라지고 친구가 된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인도네시아에서 ‘목욕했느냐’가 안부를 묻는 말이듯, 한국에서는 ‘밥 먹었어?’가 그런 뜻이라고. 오랫동안 기아에 시달렸던 민족의 집단적 기억의 상징이라는 생각도 속으로 했습니다.

언젠가 식당에서 ‘높으신 분’이 다가왔습니다. 제 식탁으로 와서 팬이라며 악수를 청하는데, 아뿔싸. 상대의 손이 제 손등을 넘어 팔뚝으로 스윽 올라오더군요. 놀라운 ‘접촉(接觸)신공’. 저는 “아이고, 더 높은 자리 가실 분이 이러시면 안되지”(이럴 땐 반말 좀 해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하면서 손을 잡아 뺐습니다. 높이갈 순 있어도, 오래 가진 못할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마 후, 그의 소식을 뉴스로 봤습니다. 역시 밥 자리에서 주책맞은 행동을 했다더군요. 어느 정치인은 기자들과 밥과 술을 먹던 중 기자를 성희롱했다가 정치인 인생에 최대 위기를 맞기도 했습니다. 


	2012년 11월 13일 세종특별자치시 정부세종청사 국무총리동을 방문한 박근혜 당시 대선후보가 구내식당에서 직접배식을 해 자리에 앉고있다/ 조선일보DB
 2012년 11월 13일 세종특별자치시 정부세종청사 국무총리동을 방문한 박근혜 당시 대선후보가 구내식당에서 직접배식을 해 자리에 앉고있다
수십년 간 ‘처신 관리’를 해온 이완구 국무총리 내정자 역시 ‘친한 기자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언론사 보도에 개입했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가 지금 곤혹스런 상태입니다. 많은 공직자를 삼켰던 ‘아들 병역 면제’의 수렁도 유유히 헤쳐나온 노장이 ‘밥 자리’에서 그만 정신줄을 놓아 버렸나 봅니다.

왜 많은 사고가 식사 자리에서 일어날까요? 
가볍게는 ‘반주(飯酒)’ 탓이 있겠지요. ‘한잔 드세요’가 ‘어이, 한잔 해’로 바뀌는 사이, 경계심은 극도로 약화됩니다. 더불어 초청자는 ‘내가 산 밥 얻어 먹는’ 상대방이 자기에게 비수를 꽂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합니다. 옛날 얘기지요. 

‘밥 자리에서는 격의가 없어야 한다’는 강박도 한몫 할겁니다. 밥 먹으면서까지 왜 긴장하냐 하는 마음이지요. ‘격의 없다’와 ‘할 말, 못할 말 못 가린다’는 다른 얘깁니다. 적어도 비즈니스 미팅과 20년지기와의 대화는 구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고 보니, 이게 다 ‘그 눔의 밥 자리’ 때문이네요. 
밥자리만 피했다면, 이 분들은 영원히 무탈했을까요? 
물론 일생에 딱 한순간 귀신에 홀려 엄한 짓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허나, 더 많은 경우는 그런 경향의 사람이 그런 종류의 사고를 칩니다. 쉽게 말하면 안에서 새는 바가지, 식당에서도 새는 겁니다.

‘식당’ 이야기를 하다 보니 “왜 박근혜 대통령에겐 ‘단골 식당’이 없을까” 하는 제 오래된 의문이 떠오릅니다. 김영삼 대통령의 칼국수집, 김대중 대통령이 좋아했다는 연포탕집 같은 것 말입니다. 이른바 적대적 세력들과도 밥먹고 술먹던 과거 정치인들은 식당에서 담판도 짓고, 뭔가를 주고 받기도 했습니다. 좋게 말해 노련한 정치, 나쁘게 말하면 밀실 정치겠지요. 


	2001년 1월 11일 저녁 성북동 한 칼국수집에서 김영삼전대통령과 김상현전의원,정대철민주당최고위원이 회동 저녁을 함께 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조선일보DB
 2001년 1월 11일 저녁 성북동 한 칼국수집에서 김영삼전대통령과 김상현전의원,정대철민주당최고위원이 회동 저녁을 함께 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럼 대통령에게는 왜 식당 에피소드가 없을까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즐기지 않는 개인적 성향, 중앙정치에서 자잔한 ‘딜’할 기회가 별로 없었던 정치 스타일과 연관이 있어 보입니다. 기자는 이것이 대통령의 폐쇄성의 상징이 아닌가 생각했더랬습니다. 하지만 독신의 여성정치인이 식당에서 ‘술먹고 밥먹는’ 모임을 자주 가졌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소문의 벽을 넘기가 별로 쉽지 않았을 겁니다. 

많은 이들이 ‘밥자리 수렁’에 빠지는 걸 보니, ‘단골식당이 없다’는 게 대통령에겐 보호막이 되어 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는 것이 힘’이란 말도, ‘모르는 게 약’이라는 속담도 있습니다. 세상사에 양면성이 존재한다는 진리가 새삼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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