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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정과 부패가 낳은 비극 캄보디아

부패왕국의 극치 [김지원 기자 2015-01-05 오후 3:48:30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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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월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 인근의 한국 기업들이 대거 입주한 공단 밀집 지역에서 의류업체 노동자들이 최저임금 두 배 인상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임금인상 시위는 그러나 갑자기 유혈 참극으로 돌변했다. 공수부대가 투입돼 노동자들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캄보디아 정부의 이날 무력 진압으로 5명이 숨지고 30여명이 부상했다.

 

캄보디아에서 국가폭력은 일상적이다. 노동자들의 파업 현장에는 어김없이 정부가 동원한 폭력이 자행된다. 그 동안 노조지도자 3명이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스바이링주 바벳시에서는 시장이 파업 중인 노동자들에게 총을 쏘아 3명이 중상을 입었지만 시장은 기소조차 되지 않은 사건도 있었다.

프놈펜 도심 재개발 지역 주민들을 강제로 이주시키는 과정에서는 경찰이 저항하는 주민들에게 총을 쏴 14세 소녀가 숨졌다. 역시 정부는 수사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 이 사건을 덮었다. 분노한 주민들이 항의 시위를 벌이자 경찰은 시위자들을 체포했고 법원은 이들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불법 벌목을 막기 위해 현장을 찾은 시민운동가가 경찰에 피살되는 사건도 있었다. 이 사건 역시 사법처리는커녕 오히려 추모집회에 참가했던 사람들만 경찰의 몽둥이 세례를 받았다.

● 경제성장 위해 국가폭력 정당화

캄보디아에서는 어떻게 이런 공권력의 무자비한 폭력이 거듭되는 걸까. 우선 경제성장을 국가적 과제로 내건 캄보디아 정부가 그를 위해 인권 따위는 양보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캄보디아도 여느 개발도상국과 마찬가지로 경제성장을 지상 과제로 삼고 있다. 실제로 지난 10여년간 연 6, 7%의 경제성장률을 구가했다. 하지만 경제성장을 단순히 국내총생산(GDP)의 증가로 등치할 때 국가는 그 수치에 집착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파괴와 희생은 불가피한 것으로 치부된다. 예컨대 무성한 숲을 그대로 두면 경제성장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지만 나무를 베어 팔면 GDP가 증가한다. 그러니 벌목이 금지된 곳에서 버젓이 벌목을 해도 국가는 모른 채 하거나 심지어 보호하기까지 한다. 대개 이런 사업에는 국가를 장악한 권력자들이 직간접적으로 개입되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도심 빈민가를 허물고 그 자리에 대규모 상업시설을 세우면 경제성장에 크게 기여한다. 그러나 수많은 주민들이 생활의 터전을 잃고 일자리도 없는 외딴 곳으로 이주해야 하는 고통이 따른다. 제조업이 취약한 캄보디아에서는 최근 경제성장을 주로 부동산 개발에 의존하다 보니 토지를 강탈당해 쫓겨나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권력을 등에 업은 자들은 허술한 토지 소유권 제도를 악용해 오랫동안 자기 땅이라 여기고 살아오던 사람들을 쫓아내고 합법적으로 땅을 강탈하는 일도 벌어진다. 어쨌든 이런 사업들 덕분에 GDP가 성장하고 때로는 권력기관의 개인들이 사적인 이익도 챙길 수 있으니 폭력을 마다하지 않게 된다.

노동탄압에도 같은 원리가 작용한다.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전체 제조업 노동자들의 80% 이상을 고용하는 외국인 투자기업들의 수익을 보장하는 동시에 더 많은 투자를 유치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캄보디아가 가진 거의 유일한 경쟁력인 낮은 임금을 유지해야 하고, 이 때문에 국가는 폭력을 써서라도 임금 인상을 막으려 드는 것이다.

캄보디아 노동자들은 1년 전 파업 당시 최저임금을 월 95달러에서 160달러로 인상해달라고 요구했다. 이는 적정 최저임금을 월 157~177달러로 제시한 캄보디아 정부 보고서와 비교해 결코 무리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월 160달러는 투자 여건이 월등히 낫다고 여겨지는 베트남의 평균 최저임금보다 많다. 투자기업들은 절대 수용할 수 없다며 정부가 나서서 파업을 중단시켜달라고 요구했고, 캄보디아 정부는 즉각 폭력을 동원해 노동자들을 제압했다. 최저임금은 결국 지난해 11월 128달러로 인상됐다.

아시아는 지금/킬링필드

2014년 8월 학살과 강제노역으로 약 200만 명이 희생된 캄보디아 '킬링필드'의 핵심 전범 누온 체아(88) 전 공산당 부서기장과 키우 삼판(83) 전 국가주석에 대해 종신형이 선고됐다. 선고 직후 킬링필드 생존자 두 명이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고 있는 모습. AP 연합뉴스

● 취약한 민주주의가 국가폭력의 뿌리

하지만 파업을 저지하기 위해 공수부대를 투입하고 탱크와 장갑차들을 시 외곽에 포진시키고 노동자들에게 발포까지 할 필요가 있었을까. 거기에는 정치적 상황이 크게 작용했다. 당시 야당은 국회 등원을 거부하며 6개월째 부정선거 규탄 시위를 이어가고 있었다. 파업 중이던 노동자들이 대거 이 시위에 가담하면서 평소 2만명 정도이던 시위대 규모가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나자 위기감을 느낀 정부가 군을 동원해서라도 반정부 시위가 확산되는 것을 막고자 했던 것이다.

캄보디아에서 국가폭력이 난무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현 정권의 속성과 그 정권을 낳은 캄보디아의 역사 속에서 찾을 수 있다. 1954년 프랑스에서 독립한 이후 캄보디아는 시하누크 전 국왕의 실질적인 1인 지배체제에서 시작해 1970년 쿠데타로 들어선 론놀 정부, 1975년 공산혁명을 통해 수립된 크메르루즈 정권, 1978년 베트남이 침공해 크메르루즈를 몰아내고 세운 캄푸치아인민공화국에 이르기까지 끊임없는 정치적 격변을 겪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전체 인구 700만명 가운데 200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크메르루즈의 학정은 악몽과도 같았다. 크메르루주는 정권 장악 후 4년간 노동자와 근로자들이 우선인 세상을 건설한다며 모든 지식인과 부유층을 적으로 간주해 고문하고 처형했다. 1979년 이후에도 크메르루즈, 시하누크 국왕 세력, 시하누크 국왕에 반대하는 세력이 연합해 인민공화국 정부에 무장저항하면서 캄보디아는 내전 상태에 빠졌다. 그렇게 10년이 흐른 후 1989년 베트남 군대가 철수하고 내전 당사자들이 선거를 통해 정부를 구성하는 데 합의함으로써 캄보디아는 마침내 전쟁을 끝낼 수 있었다. 그리고 1993년 유엔 주관 아래 첫 총선을 치르고 헌법을 제정해 지금의 캄보디아왕국이 탄생하고 민주주의가 도입되었다.

그러나 캄보디아의 민주주의는 국민적 합의를 통해 선택되지도 않았고 독재정권에 맞서 국민이 쟁취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내전을 끝내기 위한 수단으로써 총알 대신 투표로 대결의 방법을 바꾼 것이었다. 그 누구도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지 않았고 따라서 그 누구도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싸울 의지가 없는 취약한 민주주의였다. 특히 현재 집권당이자 1979년부터 실질적으로 국토의 대부분을 지배해왔던 캄보디아인민당은 선거에서 패배할 경우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평화적으로 권력을 내놓을 의사가 애초 없었다. 실제로 첫 선거에서 다수당이 되는데 실패한 인민당은 2명의 총리를 두는 기상천외한 제도를 고집해 권력을 유지했다. 그마저도 부족해 결국 1997년 다수당을 무력으로 제거하고 단일 총리 체제로 전환해 권력을 독점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첫 정부가 민주주의 헌정질서를 유린한 것이다.

● 캄보디아 민주주의의 희망은 젊은 유권자

인민당 정부가 1998년 예정대로 총선을 실시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후 지금까지 캄보디아는 5년마다 선거를 실시하고 그 결과에 따라 정부를 구성해오고 있다.

그러나 캄보디아에 민주주의가 완전히 정착했다고 판단한다면 오산이다. 인민당 정부는 선거를 통해 선출된 정부임에도 불구하고 필요하면 언제든지 민주주의 원칙과 절차를 무시하고 권력을 휘두르기 때문이다. 1980년대 일당 지배체제에서 권력을 독점하며 무력으로 통치했던 인민당에게는 여전히 법보다 총이 가깝다. 무자비한 국가폭력이 그토록 쉽게 자주 휘둘러지는 것도 바로 이러한 연유에서다. 인민당은 2013년 총선에서도 승리해 훈센 총리가 주어진 5년 임기를 마치면 무려 33년간 장기 집권하게 된다. 캄보디아의 민주주의는 선거를 통해 인민당 정부에게 합법성과 정통성을 제공하는 수단으로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인민당이 선거에서 계속 승리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요인은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는 확고한 지지층이다. 이들에게 인민당은 크메르루즈의 학정과 절대빈곤에서 자신들을 구출한 구원자이며 과거와 같은 정치적 혼란을 막아줄 강력한 보호자다. 이들에게도 민주주의와 민주주의가 담보하는 가치는 부차적이다. 결국 과거에 대한 공포가 선거를 통해 권위주의적 정부를 선택하는 모순을 낳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캄보디아는 전체 인구의 70%가 40세 이하인 젊은 나라다. 이들은 중장년층과 달리 이런 뼈아픈 과거에 대한 기억이 없거나 희미한 세대다. 2018년 다시 총선을 치를 때면 이들이 유권자 가운데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게 된다. 캄보디아에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가 뿌리내릴 수 있을지는 이들의 선택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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