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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 김황식 전 총리 노력은 배신안해

한강다리, 점 까지 봐 [권대정 기자 2015-01-31 오후 5:12:14 토요일] djk3545@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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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대입 4수 장관 "한강다리 생각, 점까지 봐 … 노력은 배신 안 해"

대학 낙방 딛고 인생 역전
5수 ‘미생’ 배우 김대명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일에 미쳤으면”
재수 김황식 전 총리
“가장 피해야 하는 건 실패 아닌 낙담”
재수 김낙회 전 제일기획 사장
“열등감, 성실·끈기로 열정으로 바꿔”

‘사람들은 손을 들어 가리키지/높고 뾰족한 봉우리만을 골라서…’ 이렇게 시작하는 양희은의 노래, 혹시 기억하시는가. 맞다, ‘봉우리’다. 노래는 이어진다. ‘지금은 그냥 아주 작은 동산일 뿐이지만/그래도 그때 난 그보다 더 큰 다른 산이 있다고 생각진 않았어/나한테는 그게 전부였거든.’

 2015학년도 대입 합격자 발표가 막바지에 다다랐다. 당신에게 전부였던 그 ‘봉우리’에 오른 이들도 있고, 그렇지 못한 이들도 있을 것이다. 여기 대입 문턱에서 잠시 쉬어갔던, 그러나 이름 석 자만 들어도 당신이 알 만한 이들이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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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보야. 아직 시작도 안 했잖아”
(드라마 ‘미생’ 김동식 대리 역 김대명)


 드라마 ‘미생’의 김동식 대리, 배우 김대명은 5수 만에 대학에 들어갔다고 최근 고백했다. 첫 대입 실패는 생각보다 덤덤했다. 고3 때 ‘4년제 대학을 다 떨어지면 서울예대 시험을 보게 해주겠다’는 아버지의 약속 때문이었다. 그는 “비밀인데 서울예대에 가려고 일부러 상향 지원했다”며 “그렇게 시험을 본 서울예대도 결국 떨어졌다”고 했다. 재수 1년간 영화만 보러 다녔다. 그러다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 ‘키즈리턴’을 만났다. 고등학교 졸업 후 젊은 날의 무용(無用)함을 독특한 미학의 경지로 끌어올린 영화다. 대사가 콕콕 가슴속에 박혔다. 연기 말고는 하고 싶은 것도, 재밌는 것도 없었다. 다른 대학에 들어갔지만 곧 그만뒀다. 기다리던 기회는 4수째 찾아왔다. 그는 “그렇게 고대하던 서울예대 예비 1번에 걸렸다”며 “보통 합격자 몇 명이 앞에서 빠져줘야 하는데 그해엔 단 한 명도 등록을 포기하지 않더라.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웃음만 나왔다”고 했다. 다음해 다섯 번째 도전 끝에 성균관대 연기예술학과에 들어갔다. 그는 이 시대 미생들에게 말한다, 행복하게 살라고. “날 행복하게 하는 일에 즐겁게 미쳤으면 좋겠어요. 남이 행복한 거 말고. 당신이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연예계엔 두 번 이상의 대입 실패를 뜻하는 N수생 인맥이 있다. 지적인 이미지의 배우 송윤아도 3수생 출신이다. 세 번의 도전 끝에 한양대 문화인류학과에 합격했다. 그는 “시험 운이 없어 3수까지 하게 됐다”며 “불합격 결과를 받아들이기 힘들어 한 달 동안 아무것도 못하고 누워 있었다”고 인터뷰를 통해 밝혔다. 가수 성시경도 서울대를 목표로 3수를 했지만 실패하고 고려대에 진학했다.

 “운보다 노력이라는 걸 깨달았다”
(홍석우 전 지식경제부 장관)


 홍 전 장관은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경기고·서울대 출신에 행정고시 패스, 지식경제부 장관까지. 그런 그도 학창 시절 누구보다 큰 아픔이 있었다. 재수, 삼수도 모자라 4수 끝에 대학에 간 것. 경기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공대를 지원했지만 낙방했다. 첫 번째 좌절은 그저 운이 없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재수와 삼수 끝에 지원한 서울대 법대와 성균관대 법대에까지 떨어졌다. 그는 “인정하기 싫을 만큼 억울했다. 삼수 해도 떨어지니까 한강 다리가 생각나더라” 고 했다. 세 번의 대학 입시 낙방은 답답함 그 자체였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어머니와 함께 남산의 용하다는 점집을 찾았다. 그를 본 역술인의 말은 싸늘했다. “당신은 대학 들어갈 팔자가 아냐.” 그러면서 한마디 덧붙였다. “수석 실력이라면 몰라도….” 결국 대입 수석엔 실패했지만 대학 입학엔 성공했다. 그는 “‘운보다는 노력’이라는 걸 그때 깨달았다”고 말했다. 주변 상황을 탓하기보다 냉정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자세를 배웠다는 뜻이다. 그는 “요즘 대학 입시가 우리 때보다 너무 어렵다. 실력은 있지만 운이 안 좋아 떨어지는 경우가 많아 더 크게 좌절할 것”이라며 “그래도 지금까지 살면서 어떤 형태로든 좌절을 맛본 사람이 성공하는 경우가 많더라. 당시엔 가슴이 아프지만 그 아픔은 훗날 성공의 필수 요소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재수는 인생 역전의 기회였다”
(김황식 전 국무총리)


 김 전 총리도 입시에서 인생의 쓴맛을 봤다. 호남 명문가 출신에 명문 학교를 다녔던 그에게 재수는 생애 최초의 시련이었다고 한다. 김 전 총리는 “고3 때 학교 대표로 전라남도 농구대회에 출전해 2~3개월 동안 공부를 제대로 못했다”며 “참담했다. 마음이 쓸쓸하고 외로웠던 힘든 시절”이라고 회상했다. 재수는 그를 변하게 했다. 세상이 만만치 않다는 걸 그제야 알게 됐다. 그는 “내 인생에서 재수 경험은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였다”며 “재수를 하지 않았더라면 오늘날 내가 있었을지 생각해본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람이 가장 피해야 하는 것은 실패가 아닌 낙담”이라고 했다. “주저앉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며 “도약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희망을 가지면 분명 더 좋은 기회가 온다”고 말했다.

 이완구 총리 후보자도 3수생 출신이다. 이 후보자는 고교 시험에서도 연거푸 고배를 마셨다. 경기고를 두 번 떨어지고 양정고에 진학한 그는 총학생회장을 맡아 한·일회담 반대 시위에 참여했다가 정학도 당했다. 이후 서울대 입시에 두 번 낙방하고 성균관대 행정학과에 들어간 경우다. 

  “나의 경쟁력은 열등감에서 출발한다”
(김낙회 전 제일기획 사장)


 김 전 사장은 ‘고향의 맛’ 다시다와 ‘쇼를 해라 쇼’ KT 쇼 광고를 제작한 광고인이다. 평사원으로 입사해 사장에 오른 그도 재수생 출신이다. 김 전 사장은 “시골에서 태어나 힘든 형편에 어렵게 서울로 유학을 와 열심히 했는데 보기 좋게 대학에 떨어졌다” 고 말했다. 그는 서강대 신문방송학과에 입학했다. “모든 게 부족했다. 그래서 평생 비주류라는 걸 잊지 않았다”면서도 “성실함과 끈기를 무기로 한 걸음씩 내디뎠다”고 했다. 그렇게 30년이 흐른 뒤 제일기획 사장이 됐다. 김 전 사장은 “배우려는 자세로 즐겁게 노력하자 열등감은 사라졌다”며 “조바심 내지 말고 ‘나만의 오늘’을 살면 삶에 열정의 폭발이 일어난다”고 강조했다.

국내 최대 규모의 참치 선단을 거느린 사조그룹의 주진우 회장도 세 번의 대입을 치렀다. 경기고 재학 시절 검정고시를 통해 서울대 정치학과에 응시했지만 낙방했다. 고난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의 발목을 잡은 건 당구였다. 입시 전날에도 새벽까지 당구를 쳤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당구를 끊기 위해 결국 피를 봐야 했다고 한다. 부지깽이로 왼손 중지 가운데 마디를 찍고 나서야 당구장 출입을 그만뒀다. 그 후 주 회장은 3수 만에 서울대 정치학과에 차석으로 입학했다.

 씁쓸한 실패를 곱씹고 있는 당신, 조금은 위안이 되는지. 양희은 노래처럼 ‘봉우리란 그저 넘어가는 고갯마루일 뿐’이다.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당신, 축하한다. 하지만 곧 깨닫게 될 거다. 인생 수십 개의 문 중에 하나를 열었을 뿐이라는 걸. 양희은은 계속 노래한다. ‘허나 내가 오른 곳은 그저 고갯마루였을 뿐/길은 다시 다른 봉우리로….’ 

곽재민 기자 jmkwak@joongang.co.kr

[S BOX] 버핏, 하버드대 떨어져 전화위복 … 컬럼비아대서 스승 만나 ‘투자 귀재’로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워런 버핏(왼쪽 사진)도 입시 낙방이라는 쓰라린 경험이 있다. 펜실베이니아대를 졸업한 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MBA)에 도전했지만 입학거부 통보를 받았다. 다른 응시생들보다 두 살 어리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는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떨어졌을 때 부모님이 실망할 거라는 두려움 때문에 끔찍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참담했던 실패는 더 큰 기회로 돌아왔다. 하버드대 MBA 진학 실패 후 컬럼비아대 MBA에 입학해 평생의 스승이자 멘토인 벤저민 그레이엄과 데이비드 도드를 만났다. 버핏은 그들로부터 ‘가치 투자’를 배워 훗날 744억 달러(지난해 기준)의 부를 일굴 수 있었다. 그는 “끔찍했던 일들이 나중엔 더 잘된 것으로 판명되는 경우가 많다”며 “일시적인 실패는 영원한 패배가 아닌 또 다른 기회”라고 했다. 그가 운영하는 ‘수전 톰슨 버핏 재단’은 2008년 컬럼비아대에 1200만 달러를 기부했다. 미국 최고로 자부하는 하버드대 MBA는 워런 버핏의 입학 거부를 가장 통탄하는 일로 기록하고 있다.

 CNN 창립자인 테드 터너(오른쪽 사진)도 프린스턴대와 하버드대 입학에 실패했다. 노벨 의학상 수상자인 해럴드 바머스도 하버드대 의대를 지원했지만 두 번이나 낙방했다. 바머스는 “시간이 지나면 대학 서열의 차이가 종이 한 장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종우 진로진학포럼 대표는 “대입 실패를 경험한 학생들이 인생이 끝난 것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며 “시간이 지나면 그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인생의 첫 시련을 잘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이 중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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