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한국 노인들, 일자리 없어
고달픈 노년 [권대정 기자 2019-05-07 오후 5:09:14 화요일] djk3545@empas.com73세 은퇴 OECD 최장, 노인자살률까지 1위
이는 나이가 들어서까지 생계를 유지하거나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일하는 시니어들이 그만큼 많다는 의미다. 자녀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허드렛일을 마다치 않는 시니어들도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OECD가 이 보고서를 처음 낸 2001년 판에서도 한국 남녀의 은퇴 후 기대 수명은 11년~15년으로 지금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요컨대 20년 가까이 시간이 흐르는 동안 시니어들의 평균 수명은 늘었지만, 이를 일하는 데에 쏟아부었다는 얘기다.
시니어 상당수가 자녀 교육과 가족부양에 힘을 쏟다 보니 제대로 돈을 모으지 못했고, 퇴직 후 일자리도 대부분 단순노무직ㆍ일용직 등으로 질이 낮아 노후 소득을 마련할 여력이 부족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과거와 달라진 경제ㆍ사회 분위기 속에 그들은 소외감과 무력감을 느낀다. 과거 그들에게 ‘의무’였던 효(孝)와 부모 봉양이 젊은 세대들에게는 ‘선택’이 됐다. 시니어들은 정작 자신의 노후에는 신경 쓰지 못해 빈곤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정부가 노인 빈곤 해결을 위해 기초연금을 인상하고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해 의료 혜택도 늘렸지만 한계가 있다.
김낙년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민연금을 받지 못하는 고령층을 보호할 마땅한 사회안전망이 확충되지 못하다 보니 이들이 불안정한 일자리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라며 “베이비붐 세대의 인구 증가와 급속한 고령화를 고려할 때 1988년부터 시작한 국민연금 제도는 상당히 늦은 감이 있다”고 짚었다
여기에 사회적으로 경로(敬老)라는 말은 희미해지고, 그 빈자리에 조롱과 멸시ㆍ혐오 표현들이 스며들며 혐로(嫌老ㆍ노인 혐오)라는 트렌드까지 생겼다. 65세 이상 노인자살률이 10만 명당 54.8명으로 OECD 국가 중 1위를 기록하는 배경에 이런 경제ㆍ사회 분위기가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의 노인자살률은 OECD 평균의 3.2배, 미국인의 3.5배, 일본인의 2.3배다. 심리적 고통도 커지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13~27년간 조울증 환자의 연평균 증가율은 4.9%지만 70대 이상 환자의 증가율은 12.2%로 가장 높았다. 20대(8.3%)에 이어 60대도 7.2%로 나타나 증가세가 뚜렷했다.
급격한 저출산ㆍ고령화 추세로 이런 문제는 갈수록 심각해질 전망이다. 과거처럼 시니어를 부양하고 공경하기에는 경제적·시간적으로 벅찬 젊은 세대의 현실도 간과할 수 없다. 이젠 개인이나 가정에만 이런 문제의 책임을 지워서는 안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김낙년 교수는 “노령 연금 등을 확충하는 방안이 있지만, 미래 세대를 위한 국민연금 재정에 불리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해법을 찾기가 쉽지 않다”며 “현재로썬 건강한 시니어들이 좀 더 일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최선의 대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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