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윤석열 ?
야당 주장에 맞춘 수사라는 시각도 [권대정 기자 2019-10-15 오후 12:36:09 화요일] djk3545@empas.com
두달 이상 계속돼온 ‘조국 정국’은 교육·언론·계층 문제까지 숱한 고민거리를 우리 사회에 던졌다. 무엇보다 과잉 수사가 검찰개혁 여론에 불을 붙인 건 기막힌 반전이다. 법무부-대검의 개혁 경쟁 속에 윤석열 검찰총장은 ‘특수부 수사하듯이 개혁도 하겠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당장 진행 중인 수사는 그리 ‘개혁’적이지 않다.
정경심 교수 자산 관리를 맡았던 김경록씨의 녹취록은 ‘논두렁 시계 사건’ 10년 만에 다시 검찰과 언론 모두에 죽비를 내리쳤다. “(조 장관이) 고맙다고 했다”는 자기 진술이 ‘컴퓨터를 교체해줘서 고맙다’로 왜곡되더라는 폭로는 주류 언론의 민낯을 까발렸다. 일부 언론이 검찰발로 “김씨가 후회한다고 했다”고 보도한 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진행하는 유튜브 방송 <알릴레오>에 보내온 ‘후회 없고 매우 만족한다’는 김씨 문자는 검찰과 주류 언론의 완벽한 패배를 증언한다. ‘피의자의 일방적 주장’이라고 한 검찰의 그간 주장과 언론 보도가 오히려 ‘일방적’이 아니었냐는 질타는 당연하다.
<한국방송> 보도 논란은 오래된 ‘수사-보도 관행’이 핵심적 문제다. ‘거악 척결’을 한다는 특수 검찰과 국민 ‘알 권리’ 보장한다는 언론의 명분이 결탁해 피의자 인권을 압도해왔다. 특종 경쟁을 이용한 검찰의 우월적 지위는 언론의 검찰 비판 기능을 약화시켰다. ‘고맙다’는 김씨의 한마디 진술까지 그렇게 급하게 다음날 아침 언론에 흘려야 했나. 취지까지 왜곡한 마당에, 알 권리 내세운 ‘피의사실 공표’ 관행은 더는 설 땅이 없다.
검찰이 사건을 축소·은폐하지 않는다는 신뢰만 있다면 일부 시급한 사안 빼고는 기소 때 공개돼도 국민 알 권리엔 아무 지장이 없다. 공수처까지 생긴다면 상호 견제로 축소·은폐 걱정은 안 해도 된다. 그래서 피의사실 공표와 알 권리 문제는 수사권 조정이나 특수부 축소보다 더 중요한 개혁 과제다.
수사 착수 꼭 50일 만에 표적이 사라졌으니 윤 총장이 지나온 길을 돌아볼 때도 됐다. ‘조범동씨를 사기꾼으로 보면 간단하다’는 김씨 주장을 검찰은 과연 설득력 있는 증거로 뒤집을 수 있는가. 특수부 검사 수십명이 투입됐지만 사모펀드 사건에서도 ‘권력형 비리’는 잘 안 보인다. 대신 표창장 진위, 노트북 실종 따위가 대중의 관심거리로 던져졌다. 바꿔 생각해보자. 경우는 다르지만 ‘검찰총장 후보자 윤석열’의 국회 청문회에서 논란이 된 <뉴스타파> 녹취 사건이나 가족들의 주식 등 금융거래를 파헤치겠다며 특수부 검사(혹은 공수처 검사) 수십명이 달려들었다면? 그래서 취임 뒤까지 두달여 아내 사업체, 녹취록 속 검사·변호사 사무실, 총장 집까지 탈탈 털었다면? 무엇보다 특수부 칼을, 대학생 자기소개서에 한줄 등장하는 이들까지 줄줄이 불러대는 데 쓴 건 ‘비례와 균형’ 수사 약속과는 거리가 멀다. 애초 청와대·국회의 검증과 여론을 거치며 ‘정치’가 해결해야 할 영역에 칼 찬 검찰이 뛰어든 원죄가 크다.
윤 총장 행보에 관심이 집중되면서 지난해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그가 보수 언론 사주들을 잇달아 만난 사실에 주목하는 이들이 적잖다. 특히 <조선일보>는 사법농단 사건에서 법원행정처와의 의심스러운 돈거래에다 칼럼 대필의 당사자로, 공개 문건에만 9차례나 등장하는데도 아무 탈 없이 넘어갔다. 편집국 책임자까지 배석한 당시 만남을 이번 수사와 연관 짓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국회 검증 국면에 생뚱맞게 ‘수사’를 촉구해온 보수 언론·야당 주장에 장단 맞춘 결과가 된 것은 여전히 꺼림칙하다.
조 장관은 ‘검찰개혁의 불쏘시개 역할’을 마무리하며 “고통스러워하는 가족에게 돌아가겠다”고 했다. 이제는 ‘윤석열의 시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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