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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李美)의 일화

시사TV코리아 애니메이션 사업부[2014-09-15 오후 2: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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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신 이미(李美)의 일화

고려 말, 삼절신으로 널리 알려진 이미는 이성계가 고려의 왕권을 멸하고 조선을 개국하자 모든 관직을 버리고 초야에 묻혀 살았다.
그 후, 10년이 지난 어느 날(태종 1년) 태조(이성계)의 왕위를 이어받은 태종이 이미를 중히 쓰고자 관직을 주며 불렀으나 이미는 부름을 거부하였다.이에 화가 난 태종이 이미를 당시 제주 향리로 좌천, 유배시켰다.
이에 이미는 제주에 입도하여 당시 도두 마을에 살면서 훈학(訓學)에 힘써 많은 문생을 육성 배출하였다.
몇 년 후, 그의 형 이신(李伸)이 외진 섬에서 쓸쓸히 지내는 아우를 항상 못 잊어 하다가 조정에 상소하여 제주도 관리를 자원하여 도안무사(都按撫使)로 취임하였다.
이신이 제주에 내려와서는 동생 이미에게 고향에 돌아갈 것을 매일같이 설득하였다. 하지만 이미는 제주 땅도 임금이 거느리는 곳이니 어디를 가나 다를 바 없다 하며 끝내 거부했다.
동생의 고집을 꺾지 못한 이신은 고민하던 끝에 동생을 강제로 출륙(出陸)시키기로 하였다. 이미를 데리고 당시 육지로 드나드는 큰 배가 있던 화북포까지 데리고 갔다. 이미를 태우고 육지로 보내고자 하였으나 갑자기 돌풍이 불어닥쳐 풍랑이 거세게 이는 바람에 다음을 기약하였다.
며칠 후 다시 이미를 보내려고 계획하였으나 다시 전번처럼 돌풍이 불어닥치고 풍랑이 거세게 이는 것이었다. 또 한번 기회를 보았으나 마찬가지였다.
결국 이신은 세 번이나 거듭된 순간적이 자연의 변화는 하늘의 조화라고 생각하고, 동생을 데려가려는 계획을 포기하였다.
이신은 자원하여 받았던 관직을 사임하고 홀로 귀향하였다. 제주에 그대로 남아 지내던 이미가 별세하자 이를 슬퍼한 문생들은 가장 좋다는 광양(光陽)에 있는 황토를 구하여 은사의 장지인 한라산 삼장굴(三臧堀) 영실교 부근까지 험한 길을 마다않고 운반하였다.
이 흙으로 스승의 봉분을 만들었는데 그 흙이 오히려 남아 무덤 부근에 객토용으로 쌓아두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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