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급증하는 가계부채가 경제성장을 저해하고 있다는 국제기구의 분석이 나왔다. 과거 부채가 성장을 촉진하기도 했으나, 이제는 긍정적인 영향보다 부정적인 영향이 더 큰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경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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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제결제은행(BIS)은 최근 발표한 정례 보고서에서 이 같은 분석을 제시했다. BIS는 2000년대 초 이후 저금리 기조가 장기간 지속되면서 대부분의 신흥국에서 민간신용이 크게 확대되었음을 지적했다. 여기서 민간신용은 금융기관을 제외한 기업과 가계 등 민간 비금융부문의 부채를 의미한다.
특히, 아시아 신흥국 중에서도 중국을 제외한 국가들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민간신용 비율이 2000년 이후 1.3배 이상 상승했으며, 중국은 이 비율이 두 배 가까이 상승했다고 밝혔다. 한국의 GDP 대비 민간신용 비율은 지난해 말 기준 222.7%로, 가계부채는 100.5%, 기업부채는 122.3%였다.
BIS는 민간신용의 증가는 자금 접근성을 높여 실물자산이나 교육 등에 대한 투자를 촉진함으로써 성장에 기여할 수 있지만, 일정 수준 이상에서는 오히려 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부채와 성장의 관계가 처음에는 정비례하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역 U자형 곡선을 그리며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한국과 중국은 이미 이 변곡점에 도달했다는 것이 BIS의 분석이다. 두 나라 모두 GDP 대비 민간신용 비율이 100%를 넘었으며, 경제성장률도 정점을 찍고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한국에서는 가계부채의 급증과 함께 주택 수요가 늘어나면서 제조업 등 다른 산업에서 건설·부동산업으로 신용이 옮겨가는 현상이 발생했다. 이는 건설·부동산업의 생산성이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에, 해당 업종에 대한 과도한 대출이 경제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실제로 건설업과 부동산업에 대한 대출 비중이 높아진 국가일수록 총요소생산성과 노동생산성 감소가 더 컸다고 BIS는 지적했다.
BIS는 이러한 신용 재배분이 과잉 투자를 의미할 수 있으며, 관련 대출 증가가 둔화된 이후에도 지속적인 생산성 저하와 성장 둔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역 U자형 관계는 고정된 것이 아니며, 정책적 대응을 통해 개선할 수 있다는 점도 언급했다. BIS는 불균등한 신용 증가의 완화와 주식시장 활성화, 핀테크 발전 등을 통해 생산성이 높은 부문으로 신용이 유입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와 같은 BIS의 분석은 최근 한국은행의 정책 기조와도 일치한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달 22일 기자간담회에서 기준금리 동결 배경을 설명하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그에 따른 가계부채 증가 위험 신호가 많이 들어오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그는 "과거 부동산 경기 부양에 의존한 경제정책은 이제 한 번 끊어줄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이창용 총재는 BIS 총재 회의에 참석한 후 11일 귀국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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