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배우들에게 짜증 한 번 안 내"

봉준호 변희봉의 열렬한 팬 [권대정 기자 2020-02-13 오후 1:11:33 목요일] djk3545@empas.com

플란다스의 개·괴물·옥자… 봉준호의 시작을 함께한 배우
"수상 소식 듣고 문자 보내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지더라고요"

"기쁜 정도입니까? 작품상 타는 걸 보고는 축하 문자를 보내는데 눈물이 쏟아져서 자판을 제대로 못 쳤어요. 손이 다 부들부들 떨리더라니까요. 심장이 터질 것 같았죠."

배우 변희봉(78)은 봉준호의 시작과 그가 감독으로 완성되는 모든 과정을 지켜본 사람이다. 봉 감독의 데뷔작인 '플란다스의 개'(2000)부터 '살인의 추억'(2003), '괴물'(2006), 넷플릭스 영화 '옥자'(2016)까지 함께했다. 봉 감독이 초등학교 시절부터 변희봉의 열렬한 팬이었다는 것, 연기를 접고 낙향하려던 변희봉을 붙들었던 이가 봉 감독이라는 건 유명한 얘기다.
변희봉은 1999년 봉 감독을 처음 만났다. 연기를 다 관두겠다고 생각할 때였다. 1966년 MBC 성우 공채 시험에 붙고 이후 '수사반장' '113수사본부' 등 배우의 길을 걸었지만, 그다지 빛을 보진 못했다. IMF 이후 방송국은 출연료마저 깎으려 들었다. 영화에 대한 불신은 더 컸다. 계약에도 없던 베드신을 찍자는 경우가 숱했다. 봉 감독이 연락했을 땐 그래서 단칼에 "안 한다"고 했다. 봉 감독은 "마포 가든호텔에서 한 번만 보자"고 사정했다. 만난 자리에서 그는 변희봉의 과거 출연작을 줄줄 읊으며 "꼭 함께 일하고 싶다"고 했다. 그때 맡은 역할이 '플란다스의 개'의 아파트 관리인 변씨다.

시나리오를 읽고 변희봉은 사실 언짢았었다. 아파트 보일러실에서 돌아다니는 개를 잡아먹는 역할이 싫었다. '플란다스의 개'가 개봉하고서도 볼 생각이 없었다. 봉 감독은 그러나 집요하게 "같이 극장 가서 영화를 보자"고 했다. 두 홉짜리 소주 한 병을 빈속에 마시고 영화를 봤다. 변희봉은 "깜짝 놀랐다. 내가 지금껏 봤던 어떤 영화와도 달랐다"고 했다. "신세계였어요. 스크린 속 내 모습도 내가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달랐습니다."

이후 변희봉은 "봉 감독이 시키면 믿었다"고 했다. 물론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다시 찍자고 할 땐 힘들었다. "'괴물' 찍을 땐 감기 걸려 몸이 영 아닌데 애드리브로만 열 번 스무 번씩 다시 가는 겁니다. '정말 이럴 건가' 했죠. 송강호씨랑 계속 찍었는데, 찍다 보니 합이 어느 순간 신기하게 맞았어요. 그때 알았죠. 왜 여러 번 가는지. 봉 감독은 그 와중에 짜증 한 번을 안 냈어요." 시멘트 가루가 흩날리는 촬영 현장에서 봉 감독 홀로 마스크를 쓰지 않았던 것도 기억에 남는다. "배우들 고생하는데 자기가 마스크 쓸 수 없다는 거죠. 탄복했습니다."

변희봉은 2017년 췌장암에 걸려 투병한 적이 있다. 최근 회복했지만 운동을 지속하며 몸을 다스리는 중이다. 봉 감독과 다시 영화를 찍고 싶으냐고 묻자, 그는 "내가 말할 일은 아니다"라고 했다. "봉 감독은 확정되지 않은 일을 섣부르게 말하질 않아요. 근데 제가 설레발칠 수 있나요. 기회가 허락된다면 그저 직접 만나 '축하하고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요. 봉 감독 덕분에 내 말년이 참 풍성해졌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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