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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애명(摩崖銘)

시사TV코리아 애니메이션 사업부[2014-09-11 오후 12: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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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임관주의 마애명(摩崖銘)

임관주는 조선조 영조 32년(1756년) 정시문과에 급제하였고, 1762년에는 언론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언론의 개방을 요구하기도 하였다. 조선조 영조 43년(1767년) 사간원 정언(正言)으로 있을 때 삼상(영의정,좌의정,우의정) 논책상소문을 올렸다가 오히려 제주도로 유배되었고 창천에 살게 되었다. 그는 마을주민들을 모아 한문을 가르쳤고, 유배가 끝난 다음날 창천마을을 떠나면서 창고천 진소절벽에 이르러 너무 아름다운 경치에 반해 한편의 시를 절벽에 새겼다.

始出荊門曰 先尋枕下川
槍巖三曲立 短瀑晩楓邊
처음으로 귀양살이 하던 집을 나서는 날에
가까이에 있는 시냇물을 먼저 찾았네.
푸른 바위는 세물 굽이 곁에 둘러 있고
늦가을 단풍가엔 짧은 폭포가 있네.

시인 임관주의 마애각은 백록담, 용연, 그리고 산방산과 이곳 창천에 새겨져 있는데 모두 정해년(丁亥)의 간지가 새겨져 있다. 이로 미루어 보면 시인이 귀양살이에서 풀려난 다음 창고천을 구경하고, 산방산을 거쳐 한라산에 올라 백록담을 유관하고, 제주로 내려와 용연을 유람하고 떠났음을 알 수 있다.

지루한 귀양살이가 풀렸는데 바삐 돌아가지 않고 이곳 저곳을 유람한 것이 이상하게 보이지만 옛 선비들이 산을 즐기고 물을 아끼는 마음씨는 지금과 달랐다. 공자가 말했듯이 어진이는 산을 즐기고(仁者樂山), 지혜로운 이는 물을 즐겼다(智者樂水)는 것을 알 수 있다.

20여년 전까지만 해도 창천에서 한시를 짓는 풍토가 있었던 것도 바로 임관주의 영향이었다.
위치 : 창고천다리(일주도로)로 남쪽하천을 따라 300여m 쯤 가면 절벽하단에 암각되어 있다.

* 참고: 제주도 마애명 (오문복, 향토사학자), 제주동양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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